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문단 편집) == 생애 == 1965년 [[레닌그라드]] [[연방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나톨리 메드베데프와 멜라냐 코발레바의 [[외아들|외동아들]]로 태어났다. 198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레닌그라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법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 1987년 법학부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 입학했고, 지도교수로 아나톨리 솝차크[* 훗날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이 되어 푸틴의 상사가 됐다.] 교수 밑에서 공부하게 되면서 같은 교수 밑에서 수학했던 [[블라디미르 푸틴]]과 선후배로 친분을 쌓게 되었다.[* 특유의 걸음걸이나 각종 깜짝 쇼맨십을 통해 KGB 출신이라는 티가 나는 푸틴과는 달리 메드베데프는 그런 경향이 전혀 없다.] 1990년 민법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공직 및 기업 활동과 병행하면서 1999년까지 동 대학에서 강사로 민법 등을 강의했다. [[1991년]] [[러시아]] [[8월 쿠데타]] 이후 푸틴은 KGB를 나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 [[공무원]]으로 옮겼는데, 메드베데프는 [[1992년]] 푸틴과 같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행정)|시청]] 공무원으로 입직하여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3년]]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대학]] 시절 지도교수의 [[중재]]로 [[의형제]] 관계를 맺고 같은 한 배를 타게 된다. 1993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목재 기업 Ilim Pulp Enterprise (ILP)의 법률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ILP는 러시아에서 급성장했고, 메드베데프는 본격적으로 공직활동에 투신하던 1999년 ILP 보유 주식을 비공개 매각했다. 1996년에는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을 도와 [[보리스 옐친]] 대선 캠프에서 일했다. [[1999년]]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푸틴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면서 푸틴의 발탁으로 '''[[대통령비서실]] 제1차장'''이 되었다. 이후 [[2000년]] 대선에는 푸틴의 '''대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푸틴의 대통령 당선의 공신이 되었다. 푸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러시아의 국영 천연 가스 개발 기업인 '''[[가즈프롬]] 이사장'''이 되어 대통령이 되는 [[2008년]]까지 재직하였다. [[2003년]]엔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고, [[2005년]]엔 '''제1부총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내각]]의 [[실세]]로 등극했다. [[2008년]] [[3월 2일]] 치러진 대선에서 70.2%의 득표율로 당선돼 대통령에 취임했다. 취임 후에 여전히 푸틴이 러시아의 흑막으로 맘껏 쥐락펴락 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정치적인 영향력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하게 되지만 '''독자 노선을 타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것이 보인다.''' [[2012년]]의 [[대선]]에 나온다고 선언한 푸틴을 [[견제]]하는 움직임으로, 한동안 푸틴이 뭐라고 하든 그에 반하는 말[* "이 나라의 대통령은 나야."]만 해서 관련 뉴스가 올라올 때마다 임기를 마친 후의 그의 신변이 걱정된다는 [[한국]] [[네티즌]]들도 있다.[* 물론 앞서 보았듯이 메드베데프는 푸틴의 오른팔급 인물, 즉 러시아 [[권력]] [[2인자]]인지라, 신변의 이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메드베데프 본인의 입장에서는 푸틴에게 '''도전할 이유가 크게 없으므로''', 계속 푸틴의 보좌역 노릇은 할 것으로 보인다. 최고 권력자의 옆에 있으면서, 최고 권력자에 준하는 [[권력]]과 [[명예]]를 마음껏 누릴 수 있고, 정치적으로도 큰 [[책임]]을 질 필요도 없으니 제일 속 편한 입장일지도. 일부에선 위 발언들도 푸틴이 [[독재자]]가 아니고 엄연히 [[견제]]도 받고 [[비판]]도 받는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메드베데프와 짜고 친 거 아니냐는 추정도 한다. ||[[파일:external/cdn1.pri.org/RTXVL1T_0.jpg|width=100%]]|| 사진은 [[폴란드]] [[바르샤바]]의 [[대통령궁]]에서 열린 공식 만찬 행사에 참석해 [[건배]]를 하고있는 모습이다. [[러시아]] 내에서도 푸틴의 [[카리스마]]에 눌려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다. 아직도 그의 [[사진]]보다는 푸틴의 사진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사실. 그러나 드미트리 역시 진보진영 젊은 층들과 푸틴까들에게 매니악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푸틴만큼의 쇼맨십은 없어서 대중에 각인되기엔 다소 무리이며, 메드베데프 지지자들 중에는 사실 그저 푸틴이 아니라서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지하는 경향도 다소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야당 중 하나인 [[공정 러시아]]은 푸틴에는 표면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메드베데프에게는 호감을 표하며 그의 정책을 지지했다. ||[[파일:external/i.telegraph.co.uk/Medvedev-Putin_2041971b.jpg|width=100%]]|| 메드베데프와 푸틴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어차피 메드베데프 본인이 푸틴의 심복이므로 전혀 이상할게 없어보이지만, 문제는 이 사진이 촬영됐을 '''당시 메드베데프는 대통령이었고 푸틴은 총리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총리가 [[김종필]]급이 아닌 이상 경질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 당시에도 푸틴이 실권자였고 동시에 메드베데프 본인이 푸틴의 심복격 되는 인물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2010년]] [[8월 13일]], [[트위터]]로 [[파블롭스크 실험국]] 관련 사안에 검토 지시를 내렸음을 알렸고[[https://twitter.com/MedvedevRussiaE/status/21067740348|#]], 결국 [[2012년]] [[4월]] 푸틴 [[행정부]]에서 해당 시설의 보존을 [[명령]]했다. 다들 [[입]]을 모아서 [[2012년]]에 연임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이유는 외모적인 요건마저도 러시아가 선호하는 리더상이 아니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물론 푸틴이 러시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는 것 하나만 봐도 열세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2011년]] [[9월 25일]] 열린 러시아 집권당인 통합 러시아의 연례 [[전당대회]]에서, [[2012년]] [[3월]]에 있을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에 자신이 출마하지 않고 '''푸틴을 추대'''할 것임을 공식 발표했다.[* 대통령을 중임 제한에서 3선 가능으로 개헌한 것도, 푸틴의 장기집권(5선, 20년) 기반을 마련한 것뿐이다.] 푸틴도 이에 화답하여 메드베데프를 총리로 재기용하겠다고 발표했다.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view.html?cateid=1046&newsid=20110926030217612&p=seoul|기사]] 그리고, [[총선]]에서 푸틴이 60%의 지지율을 확보하면서 어렵지않게 대통령직에 복귀. 메드베데프 본인의 향후거취는 불명이다. 떠나면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540128|푸틴이 잡아넣은 범죄자 석방 요구]]를 하는 나름대로의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는데, 분석에 따라서는 푸틴에게 반항하는게 아니라 푸틴 반대파 달래기용 립서비스라는 분석도 많다. [[2011년]] [[2월 9일]], [[쿠릴 열도 분쟁]]에 대한 대응으로 주둔군의 장비를 전부 최신의 것로 교체하는 행보를 보여 [[일본]]과의 마찰을 빚었다. 러시아 극우 세력들의 압도적인 지지와, 이로 인해 우러나올 [[선거]] 결과를 의식한 짓이라며 일본에서는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다. 그런데, 사실 과거 비슷한 행동을 보여준 푸틴의 전례를 보면 이것도 역시 푸틴의 지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푸틴도 해당 발언이 발표된 직후 대놓고 메드베데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결국 [[2012년]] [[5월 7일]], 푸틴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고 푸틴에게 [[러시아 총리|총리]]로 지명되었다가 하루 뒤인 8일에 총리 임명이 승인되어, [[안방마님]]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년]] [[8월]], 러시아 [[교사]]들의 [[월급]]과 관련한 실언을 해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간담회에 참석해 '선생과 대학 초임 교수들이 [[경찰관]]의 5분의 1 수준인 1만 [[러시아 루블|루블]](약 17만 [[대한민국 원|원]]) 정도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돈]]을 더 벌기 위해선 부업을 하라"''''는 답변과 함께 선생은 천직이라며 만일 돈을 벌길 원하면 사업가로 전업하는 게 나을 것이란 말을 덧붙인 것. [[교사]]의 고충을 무시하는 발언에 [[비난]]을 받게 되었고 총리직 사퇴를 요구하는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청원서에는 게재 첫날에만 16만 명이 서명했고 그 후 26만 명 이상으로 늘어나 총리 사퇴 압박이 높아졌으나 결국 유야무야 됐다.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https://www.youtube.com/watch?v=qrwlk7_GF9g&t=441s|폭로]]에 의해 어마어마한 부정축재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내용인 즉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저택, [[부모]] [[고향]]의 거대 농원, [[소치]]의 초호화 [[별장]] [[흑해]] 연안과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와이너리, 호화 [[요트]]등을 대학 [[동창]], 친인척 명의의 [[재단]]을 통해 소유하고 있는데 이 재단의 부동산 매입 자금이 러시아 거대 재벌들인 [[올리가르히]]들로부터 나왔다는 것. 이 폭로 때문에 [[2017년]] [[3월]] 러시아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대저택 [[연못]] 한가운데에 오리집이 있다는 보도 때문에 시위 현장에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arm&no=1215430|러버덕]]이 등장하기도 했다.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에서 [[니콜라스 마두로]]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일본과의 영토 분쟁 지역인 [[쿠릴 열도]]의 4개 [[섬]] 중에 이투루프 섬을 방문하기도 했다. [[2020년]] [[1월 15일]]에 자신의 총리직 사퇴 및 [[내각총사퇴]] 의사를 밝혔다.[[https://www.clickorlando.com/news/world/2020/01/15/report-russian-prime-minister-submits-resignation-to-putin/|#]] 푸틴 대통령은 곧바로 [[사표]]를 수리했다. 다만 [[통합 러시아]] 당수 직은 계속 유지하기로 하였다.[[https://www.vesti.ru/doc.html?id=3230022|#]] 메르베데프를 비롯한 내각총사퇴는 푸틴이 자르고 싶어서 자른게 아니였다. 메르베데프는 푸틴으로서도 신뢰하는 인물이며 때문에 자신에게 충실한 메르베데프를 굳이 내칠 이유는 없었다. 이유는 [[알렉세이 나발니]]가 유튜브에 메드베데프의 부정축재를 고발하는 영상을 올리며 메르데베프의 막대한 재산 축재를 폭로했기 때문.[[https://www.yna.co.kr/view/AKR20200116105100009|#]] 이후 30%대의 비교적 낮은 지지율을 보이며 여론 악화가 보이자 푸틴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셈이다.[* 푸틴이 메르베데프를 진짜 내칠거였다면 나발니가 터트린 메르베데프의 부정부패 의혹이라는 절호의 숙청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푸틴은 단지 여론때문에 메르베데프가 일선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여서 사퇴 하는선에서 모든 논란들을 종결해버렸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직을 맡고 있으면서 가장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초강경파로 인식되고 있다. 허구헌날 핵무기 타령을 일삼고 있으며, 서방이 러시아 분열을 획책하면 인류가 종말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2022년 말에는 사람들은 기상천외한 새해전망을 하길 좋아한다며 조롱조로 23년에는 유럽연합이 해체되고 제2 미국 내전이 발발하며 일론 머스크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https://naver.me/5OGldDKT|#]] 2023년 2월 7일 [[뉴스위크]]의 보도에 따르면 자신의 텔레그램에 [[https://www.newsweek.com/ukraine-denies-seeking-korean-scenario-peace-deal-russia-1779591|#]] 우크라이나가 [[6.25 전쟁|한국 전쟁]]에서의 [[군사분계선|휴전선]]처럼 휴전하는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올렉시 다닐로프]] NSC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